|
AI가 직장인의 일하는 방식과 역량 개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지식 노동자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잡아먹던 자료 조사, 데이터 분석, 프로그래밍, 문서 작성이 단 몇 분 만에 해결되기도 한다. 이러한 자원의 절약은 직장인들에게 더 높은 수준의 전략적 사고와 창의적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약속하는 듯했다. 기업들 또한 앞다투어 AI 도입을 확대하며, 반복 업무에서 해방된 직원들이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AI, 기업 생산성의 새로운 엔진2025년 와튼 스쿨은 여러 조사를 종합해 생성형 AI 도입으로 평균 25%의 인건비 절감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추정했다. 같은 해 맥킨지 조사에서는 AI를 전사적으로 도입하고 성과 관리 시스템에 통합한 기업들이 그렇지 않은 기업들에 비해 매출 성장률이 약 3배 더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들은 AI가 기업의 수익성과 노동자의 생산성을 함께 끌어올리는 핵심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성과가 곧바로 일의 ‘질적 향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하게 되었지만, AI가 제공하는 ‘지름길’이 필수적인 학습과 사고의 과정을 건너뛰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이 필요하다. 특히 경력 초기 직장인에게 AI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단기 효율의 대가로 장기적 역량 형성을 약화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인지의 외주화가 만든 함정: 생각하는 근육의 퇴화가장 흔히 제기되는 문제는 복잡한 인지 작업을 인간의 뇌가 직접 수행하지 않고 외부 도구인 AI에 맡겨버리는 현상이다. 이는 ‘인지적 지름길(Cognitive Offloading)’이라 불리는데, 인간의 뇌가 본래 에너지를 아끼려는 ‘인지적 구두쇠’라는 점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번편리함에 익숙해지면,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들마저 즉각 AI에게 넘기려 하는 경향이 강화되는데, 이는 일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질적 향상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연구도 있다. 인공지능 기업 엔트로픽(Anthropic)이 2026년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AI의 도움을 받아 프로그래밍을 학습한 사용자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학습한 이들에 비해 개념적 이해도 점수가 평균 17% 낮게 나타났다. 특히 AI가 작성한 코드를 그대로 복사해 사용한 경우, 코드 구조를 해석하거나 오류를 찾아 수정하는 디버깅 역량이 현저히 떨어졌다. 더 주목할 점은, AI의 도움을 받은 사용자의 작업 완료 시간이 독자적으로 수행한 이들보다 유의미하게 빠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프롬프트를 작성하고 결과를 해석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직접 코딩하는 시간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AI가 제공하는 효율과 편리함의 반대급부로 문제 해결을 위한 사고력과 판단력 같은 ‘인지 근육’이 퇴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시도하며 시행착오와 반복 작업을 거치는 과정은 비효율적이고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업무의 맥락을 이해하고 ‘왜 이런 결과가 도출되는가’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사고의 골격을 형성한다. 반대로 복잡한 인지 작업을 AI에 맡겨버릴 경우, 단기적으로는 효율이 높아질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비판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역량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요즘은 확실히 생각을 덜 하는 것 같습니다. 과제를 주면 백지에서 출발하지 않고 즉각 AI에 물어보거든요. 보고서도 마찬가지예요. 주제가 정해지면 바로 AI에 질문하는 거죠.” 어느 대기업 전략팀 임원의 말이다.
가트너(Gartner)가 2030년까지 기업의 약 30%가 의사결정 품질 하락을 경험할 것이라고 경고한 배경에도 이 같은 우려가 깔려 있다. 현장 경험과 깊은 사고를 통해 형성된 직관 없이 AI가 제시한 결과값에만 의존해온 세대가 조직의 의사결정을 맡게 될 경우, 판단의 질은 구조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다.
AI 리터러시의 핵심기술 진화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스스로를 도태시키는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 리터러시’와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성’의 결합이다. 이를 위해 세 가지 역량이 요구된다. 첫째, ‘왜(Why)’를 묻는 힘을 길러야 한다. 무엇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할 것인지는 기술이 답해주지만, 무엇이 진짜 문제이며 왜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지는 인간만이 결정할 수 있다. 이 과제가 어떤 가치를 만드는지, 보고서를 왜 쓰는지 묻는 질문은 곧 목적을 설정하는 행위이자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의 출발점은 호기심과 문제의식이다. ‘이것이 과연 중요한 문제인가’, ‘지금 해결해야 할 가치가 있는가’를 끊임없이 묻지 않으면, 가장 의미 있는 답을 얻을 수 없다. 질문의 수준이 곧 사고의 수준이다. 둘째, ‘맥락적 통찰력’이 필요하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지만,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조직만의 문화, 암묵적 신념, 팀원 간의 복잡한 관계 같은 ‘맥락’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들이 일하는 방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해결책을 찾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셋째, 배움을 위한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기업은 구성원에게 효율성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가끔은 AI 없이 문제를 해결해보는 ‘슬로우 워크(Slow Work)’를 장려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근본 원리를 깨우칠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업무의 질적 전환과 성장이 가능하다.
‘월-E’의 퇴화인가, 인간 잠재력의 발판인가영화 ‘월-E(WALL-E)’의 인류는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해 스스로 걷지도, 생각하지도 않는 존재로 퇴화한다. 편리함의 대가로 주체성과 세계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기술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인간이 다시 질문하고 선택하며 책임을 지기 시작할 때, 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AI의 비약적 발전을 보며 영화 속 인간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지나친 기우일까?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잠재력을 증폭시키는 발판이며, 중요한 것은 모델의 성능이 아닌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이다”라고 강조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AI에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AI가 만든 ‘지루한 평범함’ 속에 매몰될지 모른다.
이 글은 트라이씨 심리경영연구소 구자복박사 매일경제에 기고([트라이씨 직장인 심리학] 성장하는 직장인의 AI 활용법: ‘지름길’보다 ‘생각의 힘’을 키워라 - 매일경제, 2026.02.11) 한 칼럼입니다. |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