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엄친아라는 표현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엄마 친구 아들’의 줄임말인데, 자식인 나에게 엄마가 아쉬움을 표시할 때 쓰는 단골 메뉴였다. 누구네 아들은 공부 잘한다던데, 좋은 대학 갔다던데, 회사도 유명한 곳에 들어갔다던데 이런 식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엄친아는 점점 더 이상화되었다. 공부 잘하는 것에서 나아가, 성격도 좋고, 잘 생겼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결혼도 잘했고, 며느리가 여행도 보내주고, 용돈도 많이 주고 한다고 말이다. 확률상 그런 아들보다는 부모 말 안 듣고, 공부 안 하고, 효도 안 하는 아들들이 훨씬 더 많을텐데, 그런 자식들 이야기는 회자(膾炙)되지 않는다.
비교는 인간의 본성이다.우리는 절대적 수준보다는 상대적 차이에 민감하다. 처음부터 20℃ 온도인 물에 손을 넣었을 때와 먼저 5℃ 물에 넣었다가 곧장 이어서 20℃ 물에 손을 담갔을 때를 비교해 보면, 동일한 온도의 물이 다르게 느껴진다. 후자가 훨씬 따뜻하다.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어, 식당 메뉴판의 맨 위에는 가장 비싼 음식이 적혀 있다. 하지만 그 식당에서 정작 팔려고 하는 주력 상품은 첫 번째 음식이 아니라, 그것보다는 조금 싼 (하지만 여전히 비싼) 두 번째 음식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당연한 듯 비교하면서, 이렇듯 종종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언론도 비교를 부추긴다.유명한 사람들의 일상을 매일 뉴스로 접하게 된다. '누구는 주식으로 얼마를 벌었다', '작년에 산 건물이 몇 배 올랐다', '어떤 이유로 이혼했다', '재혼했다', '알고 보니 인성이 안 좋다' 등등. 나아가 내 자식을 엄친아와 비교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 유명인들의 자식들 이야기까지 연결된다. 우리가 왜 어떤 유명인 아들 딸의 IQ가 얼마이고, 미국 어느 대학에 입학했고, 어떤 전문직에 종사하고, 연봉이 얼마인지까지 알아야 할까?
사람의 인생을 비교하게 되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물론 어떤 제품을 구입하려고 할 때, 여러 제품들을 놓고 비교하는 것은 현명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제품이 아닌, 사람의 인생을 비교하게 되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우리나라가 후진국이나 중진국 시절에는 외국과의 비교가 일상이었다. '미국에서는 어떻게 한다', '일본 사람들은 어떻다더라', '유럽 선진국에서는 이렇게 안 한다' 등등....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었고, 다른 선진국들이 보이는 모습들에서 별다른 게 없고 믿어지지 않는 수준의 황당한 장면들도 자주 목격하면서, 이제 비교의 대상이 외부가 아니라 점점 내부로 향하게 되었다.
비교가 너무 일상화되고 있다.이제 비교의 대상이 자기 자신까지 왔다. '내가 다니는 회사와 다른 회사', '내 연봉과 다른 사람의 연봉', '내가 주식으로 돈을 잃은 것과 누가 주식으로 대박난 것', '내 성과급은 얼만데 누구는 얼마를 받았다'처럼 나를 타인과 비교한다. 한마디로 비교가 너무 일상화된 사회가 된 것이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가 21세기 한국 사회에는 ‘나는 비교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다가올 지경이다. 그리고 이런 비교는 늘 상향 비교다. 내가 갖지 못한 것과 남이 가진 것을 비교하고, 다른 회사의 장점과 우리 회사의 단점을 비교한다. 결과적으로 온통 불만만 남는다.
비교는 인간의 본성이지만,
비교의 끝은 피해의식이런 비교를 계속할 경우 새로운 차원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데, 비교를 할수록 우울해지는 이유는 나의 나쁜 점과 상대의 좋은 점을 비교하기 때문이고, 결과적으로 나의 손해가 확대 지각되어 피해의식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나의 장점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단점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단점까지도 장점으로 만들어서 온통 다 장점들이 되기를 희망한다. 물론 그것이 나쁜 생각은 아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좋은 것을 다 가지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다. 하지만 좋은 것만 다 가지게 되는 그런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고,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다.
연봉수준은 노동의 밀도와 거의 비례한다.여러 회사들과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은, 일반적으로 그 회사의 연봉 수준과 직원들의 노동의 밀도는 상당히 비례한다는 것이다. 연봉이 높은 회사나 직업일수록, 근무 시간의 밀도가 매우 촘촘하다. 빠져 나갈 구멍이 없다. 업무의 다양한 측면들이 잘 조직화되어 있으며, 예측가능하다. 이런 파트너와 일을 할 때는 컨설턴트인 나도 훨씬 더 긴장을 해야 한다. 반대로 노동의 밀도가 낮은 회사와 일할 때는 일단 스케줄이 너무 들쑥날쑥한다. 갑자기 연락 왔다가, 한동안 무소식이다가, 또 당장 하자고 한다. 하지만 외부에서 보면 그런 노동의 밀도는 보이지 않고 연봉 수준만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또 우리 회사와 비교하게 되지만, 우리 회사의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의식하지 못한다.
비교의 속마음...불안하기 때문...물론 우리가 살면서 비교를 전혀 안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비교를 자제할 수는 있다. 어떤 종류의 비교든, 비교를 많이 할수록 정신건강은 안 좋아지게 마련이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비교에 목숨 거는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이다. 내가 남들과 비교해서 잘하고 있는 것인지,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것인지, 나만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勞心焦思)한다.
진정한 비교의 대상은 '작년의 나'따라서 비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출발점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런 자신만의 원칙, 의미, 차별점을 만들지 못한다면, 계속 비교하고 비교당할 것이다. 끝으로, 진정한 비교의 대상은 남이 아니라 ‘작년의 나’다. 작년의 나에 비해 조금이라도 나아졌는지, 그것이 핵심이다. 그런 성장은 일의 영역일 수도 있고, 건강일 수도 있고, 심리적인 안정일 수도 있고, 인간관계일 수도 있다. 어떤 영역이든 작년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여 좀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남아 있는 긴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비결이다.
※이 글은 트라이씨 심리경영연구소 공동대표 김도환박사가 매일경제([트라이씨 직장인 심리학] 나는 비교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매일경제)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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